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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진 임예진

임예진 마이 마에 | Lim Ye Jin 본명 임기희(임琪희) 출생 1960년 1월 24일(64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국적 대한민국 행정구속령 본관 예천 임씨(예천 임씨) 신체 A형, 왼손잡이 가족 1남2녀 중 둘째 배우자, 목하 1녀 종교 개신교 학력 무학여자중학교 (졸업) 무학여자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학사) 데뷔 1974년 「파계」 임예진 마이 마에 | Lim Ye Jin 본명 임기희(임琪희) 출생 1960년 1월 24일(64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국적 대한민국 행정구속령 본관 예천 임씨(예천 임씨) 신체 A형, 왼손잡이 가족 1남2녀 중 둘째 배우자, 목하 1녀 종교 개신교 학력 무학여자중학교 (졸업) 무학여자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학사) 데뷔 1974년 「파계」

1. 개요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1960년 1월 24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잡지 「여학생」의 표지 모델로서 데뷔했다. 아저씨의 소개로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1974년 영화 파계로 데뷔했지만 당시는 충격적인 데뷔였다. 어린 비구니 역으로 출연해 삭발의 투혼을 했다. 1970년대 고교 스타로 눈부신 전성기를 보내며 성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설 무렵 큰 좌절을 겪었지만 꾸준히 활동하며 조연과 단역, 프로그램 장르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동했다. 그러던 중 중년에 접어들면서 예능에 눈을 뜨게 됐고, 현재는 예능과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고 있는 배우. 특히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허술하고 눈치 없는 캐릭터 서양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대한민국의 배우. 1960년 1월 24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잡지 「여학생」의 표지 모델로서 데뷔했다. 아저씨의 소개로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1974년 영화 파계로 데뷔했지만 당시는 충격적인 데뷔였다. 어린 비구니 역으로 출연해 삭발의 투혼을 했다. 1970년대 고교 스타로 눈부신 전성기를 보내며 성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설 무렵 큰 좌절을 겪었지만 꾸준히 활동하며 조연과 단역, 프로그램 장르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동했다. 그러던 중 중년에 접어들면서 예능에 눈을 뜨게 됐고, 현재는 예능과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고 있는 배우. 특히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허술하고 눈치 없는 캐릭터 서양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2. 활동 2. 활동
2000년대에 장나라, 문근영, 박보영이 있었고, 2010년대에 수지, 김유정, 김소현이 있었다면 1970년대에는 원조 국민 여동생 임예진이 있었다. 1970년대는 가위로 대변되는 검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당시 10대들은 몰래 테이프와 LP, 영화 등을 소비하며 문화 소비층이 됐고, 이런 트렌드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임예진이었다.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에 그야말로 미소녀라 부를 수 있는 임예진은 일약 10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임예진의 젊은 시절. 지금 봐도 착하고 똑똑하고 모범적이고 착실한 여학생이 당시 임예진의 이미지였다. 교과서의 영희가 화면에 튀어나왔다고 생각하면 될 만큼 당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8~90년대 유행했던 연예인 책받침의 원조 스타 역시 임예진이었고, 학생수첩, 교복모델 등 지금의 여성 아이돌들이 걸었던 그 길을 처음 걸었던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다. 그 시절 임예진 또래 혹은 그보다 한두 살 어린 남학생들에겐 그야말로 낭만의 대상이었다. 거기에 당대 청춘스타 이덕화와 촬영하던 <진짜> 시리즈가 전무후무한 대박 이후 이어지는 하이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무조건 임예진이 차지하고, 임예진을 기준으로 영화계가 돌 정도의 대열에 오른다. 1976년에는 연예인 수입 랭킹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1970년대 스케줄이 워낙 많아 영화사 관계자들이 학교에 픽업하러 왔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고 청소년들은 어려웠던 1960년대를 보내느라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야외활동도 많아 사람들의 피부색이 지금에 비해 어두웠다. 그런데 임예진은 신기할 정도로 피부가 하얀 편이라 관계자들이 쏟아지는 학생들 중에서 하얀 얼굴만 찾으면 돼 편했다고. (어느 정도로 보면 임예진의 피부색은 요즘 전소미나 그녀의 예린 정도인데, 당시 한국 소녀들의 평균적인 피부색은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 중에는 거의 씨스타 평균 정도에 해당할 정도로 어두웠고, 무엇보다 피부가 하얀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 젊은 시절의 임예진이지만 1970년도 후반에 하이틴계 영화가 정부 정책으로 우수 영화 장르에서 밀려나게 되고, 마침 그 무렵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임예진 본인도 성인 연기자로서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1979년도 신성일과 함께 촬영한 ‘땅콩껍질 속의 연가’를 시작으로 성인 연기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하이틴 스타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기 때문에 노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성인 연기는 기자들과 연예계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대중과 언론의 뭇매를 맞게 되고, 이후 장기간의 슬럼프가 이어진다. 참고로 해당 영화에서 함께 출연한 신성일이 추후 인터뷰에서 공개한 촬영 에피소드에 따르면 당시 임예진의 어머니가 매니저처럼 임예진을 보호하고 동행해 절대 노출 장면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밥 먹고 오라고 잠시 외출을 시킨 뒤 그 짧은 틈을 노려 번개같이 찍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성인 이후에는 당시 각 방송사에 있던 공채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역배우로 시작한 탤런트들 대다수는 특채로 계속 연기를 이어갔고, 또래 공채에는 이질적 존재로 따돌림을 당했다는데, 이를 잘 극복해 스타로 만든 송승환, 강남길도 그때 겪은 고통에 상당한 공감을 표하는 걸 보면 상당히 심했던 것 같다. 외모도 이질적이었던 것이 청소년기에는 강점이었지만 성인기에 들어서는 단점이 됐다. 바람이 불어 좋은 날을 보면 미모로 유명했던 김보연, 유지인이 함께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완전히 다른 피부톤을 하고 있어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이때의 슬럼프를 깨준 사람이 선배 윤여정.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얻으며 성인 배우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임예진에게 윤여정은 “네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베푸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까지 사랑받는 주인공만 할래? 그렇게 사랑받으면 이제 사랑을 나눠야지. 배우는 어떤 역할이든 해낼 수 있어야 배우다. 너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서 고민 중이야.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거다.”라며 임예진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고, 그로 인해 임예진은 ‘아역배우’에서 진정한 ‘성년배우’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본인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해준 윤여정에 대한 고마움은 매우 크다고 한다.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인 임예진은 배우로서의 끈을 놓지 않고 조연과 단역을 오가며 활동하기 때문에 과거의 임예진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하이틴 스타라는 이미지는 잊혀지고 한 배우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어느새 드라마계의 거물 김수현 사단의 일원으로 안방극장에서 낯익은 얼굴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1980년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임예진은 SBS 개국 이후 최초의 시트콤이라 할 수 있는 ‘오박사네 사람들’에 참여하게 되지만 이전까지의 청순 이미지는 모두 없애고 국민학생 조카와 장난치는 철부지 이모 역에 개그 연기도 한껏 달아올라 감초 연기를 톡톡히 한다. 그럼에도 그 외모가 어디에도 가지 않아 그 미모는 여전히 돋보인다.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는 예능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세바퀴’ 고정 패널로 출연해 김연아, 나르샤, 산다라박, 세일러문 등 나이를 잊은 패러디 개그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현재는 방송 3사의 여러 드라마에서 조연(주로 주인공의 어머니 역)으로 감칠맛을 더하고 있으며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에 장나라, 문근영, 박보영이 있었고, 2010년대에 수지, 김유정, 김소현이 있었다면 1970년대에는 원조 국민 여동생 임예진이 있었다. 1970년대는 가위로 대변되는 검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당시 10대들은 몰래 테이프와 LP, 영화 등을 소비하며 문화 소비층이 됐고, 이런 트렌드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임예진이었다.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에 그야말로 미소녀라 부를 수 있는 임예진은 일약 10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임예진의 젊은 시절. 지금 봐도 착하고 똑똑하고 모범적이고 착실한 여학생이 당시 임예진의 이미지였다. 교과서의 영희가 화면에 튀어나왔다고 생각하면 될 만큼 당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8~90년대 유행했던 연예인 책받침의 원조 스타 역시 임예진이었고, 학생수첩, 교복모델 등 지금의 여성 아이돌들이 걸었던 그 길을 처음 걸었던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다. 그 시절, 임예진 또래 혹은 그보다 한두 살 어린 남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낭만의
3. 사건·사고/논의 3. 사건·사고/논의
3.1. 아버지 채무불이행 논란 3.1. 아버지 채무불이행 논란
2018년 12월 15일 인천에서 부동산업자로 일한 A씨는 임예진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빌린 2억5000만원을 10년간 갚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예진 아버지 ’10년간 2억5,000만원 채무불이행’ 공식입장을 통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겼고, 아직 이번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12월 15일 인천에서 부동산업자로 일한 A씨는 임예진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빌린 2억5000만원을 10년간 갚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예진 아버지 ’10년간 2억5,000만원 채무불이행’ 공식입장을 통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겼고, 아직 이번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3.2.관련문서 3.2.관련문서
빚투운동 빚투운동
4. 여담 4. 여담
배우자인 MBC 소속 최창욱 PD와는 임예진이 어린이 드라마 또래와 두리로 연기하던 시절 조연출로 만나 서로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릴 때부터 임예진의 꿈은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하고 가장 먼저 보호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1녀를 두고 있다. 희대의 막장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출연해 유체이탈 연기를 펼친 바 있다. 임예진이 실수로 자신보다 7살 많은 독고영재에게 자신보다 어린 나이인 줄 알고 “영재 씨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고, 어이없는 나머지 “음.. 나는 이덕화의 친구다라고 말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한다. 2019년 페미니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의 텀블벅 펀딩에 임예진의 동영상 응원 메시지가 올라왔다. 본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싶다고 제작진 측에 먼저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송골매 3집 아기에게라는 곡을 작사한 이력이 있다. 조카가 태어나서 너무 기쁜 마음으로 작사했다. 이경규의 대학학과 1년 선배다. 임예진 “이경규, 신인 시절 애교 부리고 나오면 모른 척” 폭로 정래논의 명곡 이미지가 임예진을 기린 노래라는 대한민국 한정 개그가 있다. 배우자인 MBC 소속 최창욱 PD와는 임예진이 어린이 드라마 또래와 두리로 연기하던 시절 조연출로 만나 서로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릴 때부터 임예진의 꿈은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하고 가장 먼저 보호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1녀를 두고 있다. 희대의 막장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출연해 유체이탈 연기를 펼친 바 있다. 임예진이 실수로 자신보다 7살 많은 독고영재에게 자신보다 어린 나이인 줄 알고 “영재 씨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고, 어이없는 나머지 “음.. 나는 이덕화의 친구다라고 말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한다. 2019년 페미니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의 텀블벅 펀딩에 임예진의 동영상 응원 메시지가 올라왔다. 본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싶다고 제작진 측에 먼저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송골매 3집 아기에게라는 곡을 작사한 이력이 있다. 조카가 태어나서 너무 기쁜 마음으로 작사했다. 이경규의 대학학과 1년 선배다. 임예진 “이경규, 신인 시절 애교 부리고 나오면 모른 척” 폭로 정래논의 명곡 이미지가 임예진을 기린 노래라는 대한민국 한정 개그가 있다.
5. 출연 5. 출연
5.1. 영화 5.1. 영화
1974년 《파계》··· 묘카 1975년 《여고졸업반》… 유신혜 1975년 《빨간 구두》 1976년 『정말로 정말로 잊지 말아요』··· 정아 1976년 ‘푸른 교실’…영애 1976년 ‘정말 꿈이 있다’··· 희숙 1976년 분노의 능금…··· 청 1976년 《소녀의 기도》··· 정희 1976년 ‘너무 좋은 거야’··· 선희 1976년 《이런 기분 처음이야》 1976년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정아 1977년 《첫눈이 올 때》… 혜영 1977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희 1977년 《이 다음 우리는》··· 예원 1977년 《아무도 모른다》··· 은아 1977년 《쌍무지개가 선 언덕》…은주/영란 (1인 2역) 1977년 《우리들의 세계》··· 보라색 1978년 《고교 명랑 교실》 1978년 《너무 좋아》··· 지연 1978년 《화》··· 새댁 1979년 《맨발의 청춘 77》··· 혜미 1979년 《땅콩껍질 속의 연가》 … 주리 1988년 사랑의 낙서 2002년 클래식··· 매점 주인 2004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2006년 《다세포 소녀》 2007년 《무림 여대생》 2009년 《비밀애》 2015년 《시간이탈자》 2019년 《우연, 결혼》… 해주의 어머니 1974년 《파계》··· 묘카 1975년 《여고졸업반》… 유신혜 1975년 《빨간 구두》 1976년 『정말로 정말로 잊지 말아요』··· 정아 1976년 ‘푸른 교실’…영애 1976년 ‘정말 꿈이 있다’··· 희숙 1976년 분노의 능금…··· 청 1976년 《소녀의 기도》··· 정희 1976년 ‘너무 좋은 거야’··· 선희 1976년 《이런 기분 처음이야》 1976년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정아 1977년 《첫눈이 올 때》… 혜영 1977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희 1977년 《이 다음 우리는》··· 예원 1977년 《아무도 모른다》··· 은아 1977년 《쌍무지개가 선 언덕》…은주/영란 (1인 2역) 1977년 《우리들의 세계》··· 보라색 1978년 《고교 명랑 교실》 1978년 《너무 좋아》··· 지연 1978년 《화》··· 새댁 1979년 《맨발의 청춘 77》··· 혜미 1979년 《땅콩껍질 속의 연가》 … 주리 1988년 사랑의 낙서 2002년 클래식··· 매점 주인 2004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2006년 ‘다세포 소녀’ 2007년 ‘무림 여대생’ 2009년 ‘비밀애’ 2015년 ‘시간이탈자’ 2019년 ‘우연, 결혼’… 해주의 어머니
5.2. 드라마 / 시트콤 5.2. 드라마 / 시트콤
5.3. 뮤직비디오 5.3. 뮤직비디오
2009년 주현미&소현 – 짜라차차 2011년 티아라 – Roly-Poly 2009년 주현미&소현 – 짜라차차 2011년 티아라 – Roly-Poly
5.4 방송 5.4 방송
진실게임 (SBS) 세바퀴 (MBC) 복면가왕 50차 경연: 목표는 혼인신고 줄리엣(MBC) 기분전환쇼 동치미 (MBN) 진실게임 (SBS) 세바퀴 (MBC) 복면가왕 50차 경연: 목표는 혼인신고 줄리엣(MBC) 기분전환쇼 동치미 (MBN)
6. 총리 6. 총리
1975년 대종상 신인장려상 《여고졸업반》 2007년 MBC 연기대상 특별상 2008년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여자 우수상 1975년 대종상 신인장려상 《여고졸업반》 2007년 MBC 연기대상 특별상 2008년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여자 우수상
7. 관련 문서 7. 관련 문서
배우/한국배우/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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